라호르의 햇살 아래 낡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린 시절 좁은 마당에 엎드려 꾸었던 꿈들이 문득 떠오릅니다. 파일럿이 되어 파키스탄의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는 상상, 아름다운 무늬와 색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혹은 낡은 책 속 이야기를 현실로 불러내는 이야기꾼이 되는 꿈까지. 그 시절의 꿈들은 순수했고, 제 작은 세상을 가득 채우는 희망이자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라호르의 현실적인 삶과 마주하면서, 어린 날의 꿈들은 조금씩 빛이 바래거나 그 방향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 속에서, 저는 제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잠시 잊은 채 현실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졸업 후 번듯한 사무실에 앉아 일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마치 타인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갇힌 새처럼, 자유롭게 날갯짓하고 싶다는 갈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된 상자 속에서 먼지 쌓인 스케치북을 발견했습니다. 어린 시절 밤새도록 그림을 그렸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삐뚤빼뚤한 선, 서툰 색칠이었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향한 저의 뜨거운 관심과 상상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잊고 지냈던 제 안의 작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퇴근 후 남는 시간을 활용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붓을 잡고 색깔을 섞는 행위 자체가 어린 시절 느꼈던 순수한 기쁨을 되살려주었습니다. 복잡했던 생각들은 사라지고, 오롯이 캔버스에 집중하는 시간 속에서 저는 비로소 편안함과 자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화가의 꿈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묻혔지만, 그림을 통해 저는 잃어버렸던 제 안의 예술적인 열정을 다시 발견한 것입니다.
물론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당장 제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직장 생활을 하고, 현실적인 문제들과 마주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린 시절 꿈꿨던 화려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느끼는 작은 만족감과 충만함에 있다는 것을요. 라호르의 붐비는 시장에서 흥정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에너지, 릭샤의 경쾌한 경적 소리, 갓 구운 난의 따뜻한 온기 속에서, 저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어릴 적 꿈은 때로는 이루지 못할 환상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꿈들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은 열정과 흥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꿈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의 본질을 이해하고 현재의 삶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실현해나가는 지혜입니다. 라호르의 다채로운 색깔처럼, 우리 안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탐험하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만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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